아부다비의 계절은 한국처럼 기온과 옷차림의 변화로 먼저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생활이 익숙해진 뒤에는 넓은 도로와 밝은 하늘, 실내 냉방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비슷한 색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21년 5월 어느 날, 늘 지나던 생활권의 길에서 붉은 꽃이 가득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있는 관광 명소가 아니라 장을 보거나 이동할 때 지나던 평범한 도로였습니다. 익숙한 초록과 회색 사이에 강한 붉은색이 생기자 같은 길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이 글에 사용한 두 사진은 그때 직접 촬영한 기록입니다. 한 장은 나무를 조금 더 가까이 바라본 장면이고, 다른 한 장은 도로와 가로수가 함께 보이는 넓은 장면입니다. 정확한 수종을 단정하기보다, 당시 생활자에게 이 색이 어떤 계절 신호처럼 느껴졌는지를 남기려고 합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꽃보다 길 전체의 변화였다
차로 같은 길을 반복해서 지나면 도로 폭, 신호, 다음 출구처럼 이동에 필요한 것만 보게 됩니다. 저 역시 평소에는 주변 가로수를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붉은 꽃이 넓게 퍼진 날에는 도로 전체가 이전과 다른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이 사진에서 제가 다시 보게 되는 것은 특정 나무 한 그루가 아닙니다. 도로 가장자리의 초록, 나무 위의 붉은색, 밝은 하늘이 한 화면에 겹쳐 있는 모습입니다. 건조한 기후의 도시라고 생각하면 모래색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생활권에는 관리된 녹지와 가로수가 일상의 배경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이유도 특별한 식물을 발견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보던 길이 갑자기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변화를 알아차린 순간에 더 가까웠습니다.
가까이 보니 붉은색과 초록색의 경계가 더 선명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꽃이 모여 있는 부분과 잎의 초록이 분리되어 보입니다. 멀리서 도로 풍경으로 볼 때는 하나의 붉은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에서는 가지마다 꽃과 잎이 섞여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만 보면 장소의 크기나 주변 환경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두 장을 함께 남기는 편이 당시의 기억에 더 가깝습니다. 넓은 사진은 이 나무들이 생활 동선 속 어디쯤 있었는지를 보여 주고, 가까운 사진은 제가 왜 그날 시선을 멈췄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런 차이는 오래된 생활 사진을 정리할 때 특히 중요했습니다. 예쁜 장면 하나만 고르면 여행 사진처럼 보이지만, 주변 도로와 보도, 다른 나무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실제로는 평범한 하루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사막 도시에서도 계절은 작은 변화로 보였다
아부다비에서 계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온입니다. 그러나 생활하면서는 기온표보다 해가 지는 시간, 밖에 머물 수 있는 시간, 가로수의 색처럼 작은 변화로 계절을 느낀 날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라면 봄꽃이나 단풍처럼 널리 알려진 계절 신호가 있습니다. 아부다비에서는 그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몇 년을 지내면서 반복해서 보이는 풍경을 스스로 기억하게 됐습니다. 어느 시기에는 저녁 산책이 편해지고, 어느 시기에는 햇빛이 더 날카롭게 느껴지고, 또 어느 날에는 늘 지나던 나무의 색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이 붉은 꽃길도 그런 개인적인 기준 중 하나였습니다. 정확한 개화 달력을 만들 정도의 관찰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다시 보면 2021년 5월의 생활 분위기를 즉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관광지가 아닌 생활권 사진이 오래 남는 이유
아부다비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모스크, 코르니시, 큰 호텔처럼 이름이 있는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거주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진의 중심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식료품점에 가는 길, 차를 세워 둔 공간, 집 주변의 나무처럼 이름이 없는 장소를 더 자주 찍게 됐습니다.
이런 사진은 여행 정보로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시 실제 생활 반경을 보여 줍니다. 어느 정도의 녹지가 있었는지, 차로 이동하면서 무엇을 봤는지,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도 도시가 어떤 표정을 보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사진을 정리할 때는 유명 장소의 사진과 생활권 사진을 같은 기준으로 보지 않습니다. 랜드마크 사진은 장소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생활 사진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의 리듬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지금 방문할 사람에게 이 사진이 줄 수 있는 정보
이 사진을 보고 현재 같은 도로에서 같은 꽃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촬영 이후 조경이 바뀌었을 수 있고, 제가 수종을 정확히 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재의 개화 상태나 위치를 확인하려면 최신 현지 정보가 필요합니다.
대신 한 가지는 여행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유명 장소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생활감을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숙소 주변을 짧게 걷거나 차창 밖의 가로수와 공원을 살피면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도시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2021년 5월의 붉은 꽃길은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목적지가 아니었지만 멈춰 보게 됐고, 계획하지 않은 사진 두 장이 남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두 장이 당시의 계절과 생활권을 설명하는 작은 현장 기록이 됐습니다.
아부다비의 계절을 몸으로 느낀 또 다른 기록은 안경이 뿌옇게 흐려지던 아부다비 여름 아침에서 이어집니다. 유명 관광지보다 생활 장면을 중심으로 보고 싶다면 두 글을 함께 보면 기온과 거리 풍경이 생활 리듬을 어떻게 바꾸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